“김상현은 민주화로 가는 ‘1985년 선거혁명’의 일등공신” (2025)

기사를 읽어드립니다

[짬] ‘김상현 평전’ 공저한 김학민 이사장

“김상현은 민주화로 가는 ‘1985년 선거혁명’의 일등공신” (1)

“박정희는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하며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내리면서 평소 눈엣가시였던 15명 야당 의원 명단을 보안사령관 강창성에게 건네주고 혼내주라고 지시합니다. 김상현, 이세규, 조윤형, 최형우, 김녹영 등이었죠. 이들은 실제 국군보안사(현 방첩사령부)에 끌려가 엄청나게 고문을 당합니다. 군산 지역구 강근호 의원은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지팡이를 짚어야 했고 군 장성 출신으로 청렴하기로 소문난 이세규 의원은 최형우 의원과 함께 물고문까지 당했죠.”

최근 ‘풍운의 정치인 김상현을 읽다’(학민사)를 고원씨와 공저한 김학민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에게 지금 왜 ‘정치인 김상현’을 기억해야 하느냐고 묻자 나온 말이다.

광고

그의 말대로 ‘6선 의원’ 김상현(1935~2018)이 52년 전 당한 고초는 과거의 일로만 여겨질 수 없다. 국민이 지난 3일 실시간으로 확인했듯 한국의 현 ‘최고 권력자’ 머릿속 생각과 다르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상현은 3선 의원 때인 1972년 보안사에서 발가벗긴 뒤 매달아 각목으로 구타하는 이른바 통닭구이 고문에 전기 고문까지 당했다. 7년 뒤에는 이른바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 위장결혼식 사건’ 배후로 몰려 역시 보안사에서 몸이 온통 시커멓게 멍이 들 정도로 고문을 당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도 역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유신과 전두환 군부 통치에서 꼬박 4년을 옥에서 보낸 그는 87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출마도 할 수 없었다.

광고

광고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저자를 만났다.

“김상현은 민주화로 가는 ‘1985년 선거혁명’의 일등공신” (2)

광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1980년에는 아버지 고 김윤식 의원과 함께 부자가 함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되기도 한 김 이사장의 생애는 김상현과 적잖이 겹친다.

둘의 첫 인연은 1974년 10월 안양교도소로 올라간다. 감방 선배 김상현은 연세대생 김학민이 이감왔다는 말을 듣고 김학민의 감방을 찾아 한산도 담배 한 갑을 불쑥 놓고 갔단다. 당시 담배 한 갑은 감옥 물물교환 시세로 밍크담요 한 장 값이었다. 14년이 흘러 1988년 총선에서 저자는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김상현은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 서대문갑 지역에서 맞섰다. 결과는 둘 다 낙선이었다. 1990년 3당 합당 뒤 김상현이 다시 김대중과 손을 잡고 같은 지역구에서 연이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데, 모두 저자가 김상현의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5년 전 구성된 ‘후농 김상현 평전 발간위원회’가 저자를 꼭 찍어 평전 집필을 강권한 데는 이런 인연이 작용했을 것이다. 발간위에는 정대철, 장영달, 유인태, 원혜영 전 의원과 함세웅 신부, 임헌영 문학평론가 등이 이름을 올렸다. “정대철 의원 등이 후농이 박정희·전두환의 급변했던 시기 주요 사건에 거의 다 관련되었고 또 내용도 가장 잘 알고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했으니 정치적 족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이야기하시더군요.”

저자는 평전에서 ‘원칙을 지키되 타협과 대화, 조정에 능한 정치인 김상현’의 면모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흔히 ‘김대중 가신’, ‘동교동계 2인자’ 정도로 대중에게 각인된 김상현이 “민주주의 원칙에 철저한 의회주의자”였다는 점은 그가 유신과 전두환 통치를 거부하고 치른 4년 옥고가 잘 보여준다.

광고

김 이사장은 정치인 김상현의 장점이 한국 역사에 순기능으로 작용한 사례 둘을 들었다. 하나는 탁월한 정치인 김대중 탄생에 적잖은 기여를 한 것이다.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대중은 원내의 세 불리에도 김영삼·이철승을 제치고 신민당 대선 후보로 우뚝 섰다. “김상현은 1971년 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을 만든 기획자입니다. 머뭇머뭇하던 김대중이 당내 경선에 나서도록 설득했고 이어 기민한 판단력과 탁월한 조직력으로 불리한 세를 극복하고 결국 후보로까지 만들었죠.”

그는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과 뒤이은 85년 2·12총선 승리를 두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기여로 꼽았다. 저자는 전두환 정권 때인 1984년 김상현이 미국 망명 중인 김대중을 대신해 김영삼 상도동계와 협상에 나서 민추협을 결성하고 이듬해 총선 승리를 쟁취한 과정을 세밀하게 복기하고 이 과정의 김상현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과 싸우기 위해 제도권에 선명한 야당을 만드는 게 중요했는데요. 미국에서 국내 정보가 제한적이던 김대중과 동교동계는 상도동계와 손을 잡고 민추협을 만들거나 신당으로 총선에 참여하는 데 처음엔 소극적이었어요. 재야 다수도 독재 정권의 들러리가 될 수 있다며 총선 참여에 부정적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김상현이 재야와 동교동계를 설득하고 이어 상도동계와 지분 등 주도권 협상을 잘 마무리해 선거혁명을 만들어냈어요. 이런 힘이 모여 한국 사회는 민주화로 나아갈 수 있었죠.”

‘김대중 가신’으로 알려진 ‘6선 의원’
“급변한 현대사 중요 사건에 관여한
정치생애 정리 시급하다” 권유에 집필

독재 시절 혹독한 고문에 4년 옥고도
“원칙 지키되 타협·조정 능한 정치인
전두환 때인 84년 민추협 설립 산파역
경쟁자 양김 협력 이끌어 총선 승리”

김상현은 한마디로 어떤 정치인이었느냐는 말에 저자는 “의회민주주의자”라고 답했다. “김 의원은 정치와 국회를 좋아했어요. 이상적으로 국회를 운영하면 나라의 모든 갈등과 질시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다른 진영 사람과도 엄청 잘 지냈어요. 대척 관계에도 늘 만나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고요. 김 의원이 오해를 부르면서도 유신 직전에 박정희를 만난 것도 그 때문이죠. 김 의원이 자주 했던 말이 바로 ‘정치는 주고받기’였죠.”

저자는 ‘인간 김상현과 정치’를 해명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그는 야간고 중퇴 학력에 ‘소년 가장’이었던 흙수저 김상현을 한국 현대사의 중요 정치인으로 발돋움시킨 데는 무속인이었던 어머니와 아내 정희원씨 몫이 크다고 봤다. 어머니는 한국전쟁 때 마을에서 혼자 빨치산에 협력한 것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국군에 처형당했고, 사업 역량과 추진력이 뛰어난 아내는 김상현이 민주주의자로서 지조를 지키는 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죽음은 김 의원이 이후 ‘민중 편에 서는 현실주의자’의 길을 간 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정희원씨는 유신 선포 뒤 감옥행을 앞두고 고심하던 남편에게 ‘아이들을 변절자의 자식으로 만들려면 이혼하자’는 말까지 했죠.”

김상현은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는 ‘친화력 갑’ 정치인이었단다. 평소 욕하던 재야인사들도 김상현과 한번 술자리를 한 뒤엔 팬이 되었다는 증언이 많다. “학연이나 지연 등 사회적 자산이 없으니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 친해 지내려고 노력했죠. 그는 적에게도 존경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했죠.”

저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출판인으로 터를 잡고 500권 가까운 책을 냈고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사건의 실체를 짚는 ‘만들어진 간첩’(2017) 등 한국 현대사의 속살을 드러내는 묵직한 책도 여러 권 집필했다.

“김상현은 민주화로 가는 ‘1985년 선거혁명’의 일등공신” (3)

지난 50여년의 삶은 민주주의와 민중 생존권, 통일을 외친 민청학련 사건의 연장선 속에 있었고 생애 가장 자랑스러운 일 역시 민청학련 활동이라는 김 이사장에게 ‘12·3 내란’ 이후 한국 민주주의를 전망해달라고 청하자 “낙관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 내란 시도가 ‘이렇게 되면 안 되겠구나’라고 국민을 각성시킨 계몽 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지난 토요일(7일) 국회 앞 집회에 갔는데요. 두세 시간이 되도록 아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어요. 박근혜 탄핵 집회 때만 해도 매번 2, 30명 아는 사람을 만나고 집회 뒤 막걸리 집을 가서도 또 만나곤 했어요. 하지만 이번 집회 참석자들은 완전히 달라요. 저도 이 판에서 좀 알려진 사람인데 굴욕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는 희망의 징조이죠. 이번 사건이 젊은 사람들이 공동체 이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도록 만든 것 같아요. 계엄령 때 어떤 세상이 된다는 게 포고령에 나오잖아요. 그게 학생들의 집회 참여 추동에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출판인 혹은 저자로 그간 펴낸 책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이 뭔지 물었다. “‘만들어진 간첩’입니다. 법(국정원법) 위반으로 구속을 각오하고 최종길 교수 고문 치사에 관여한 40~50명의 옛 중앙정보부 직원 실명을 다 밝혔습니다. 법에는 정보부 요원은 퇴직자 이름도 공개할 수 없도록 되어 있거든요. 최 교수 사건 관련자를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진실화해위 보고서에서도 비공개로 나오는 중정 직원 이름을 다 찾아 공개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김상현은 민주화로 가는 ‘1985년 선거혁명’의 일등공신” (2025)
Top Articles
Latest Posts
Recommended Articles
Article information

Author: Jerrold Considine

Last Updated:

Views: 6041

Rating: 4.8 / 5 (78 voted)

Reviews: 85% of readers found this page helpful

Author information

Name: Jerrold Considine

Birthday: 1993-11-03

Address: Suite 447 3463 Marybelle Circles, New Marlin, AL 20765

Phone: +5816749283868

Job: Sales Executive

Hobby: Air sports, Sand art, Electronics, LARPing, Baseball, Book restoration, Puzzles

Introduction: My name is Jerrold Considine, I am a combative, cheerful, encouraging, happy, enthusiastic, funny, kind person who loves writing and wants to share my knowledge and understanding with you.